미국으로 이사왔습니다!
제게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는 나심 탈레브의 Antifragile입니다.
탈레브는 optionality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인생에서의 선택지란 내 삶을 무한한 업사이드(unlimited upside)와 제한된 다운사이드(limited downside)가 있는 상황에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다운사이드, 즉 떨어질 수 있는 한계를 제한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지 말 것,” “목숨이 위험한 활동은 피할 것,” “회복 하기 힘든 상황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은 레버리지 베팅은 하지 말 것” 같은 뻔하지만 중요한 규칙을 따르는 거죠. 한마디로, 감당하지 못할 짓은 하지 말자,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반면에, 무한한 업사이드를 만드는 일은 항상 인생을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뭔가 한계가 느껴질 때마다 저는 이를 뚫어내는 변화를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부 때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여러 스타트업에 발을 담갔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크게 배운 건 “프로그래밍만 잘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졸업 하기 직전, 축구를 하다 친해진 절친이 자연어처리(NLP) 연구실을 소개해줬고,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저였지만 석사로 남아 연구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2년 동안 머신러닝, 딥러닝, NLP를 깊이 팠습니다. 아주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 연구를 배우고, 결국 NLP 학회에 논문도 발표하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타이밍으로 봐서는 운이 정말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1학년 때 이세돌 vs. 알파고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2년은 “그저 프로그래머로서의 제 한계”라는 천장을 부셔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년에 학위를 마치고 홍콩에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했습니다. 1년쯤 지나니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게 보였고, 7년 넘게 살던 홍콩도 정치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또다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더 큰 회사로 옮기기 위해 홍콩을 떠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큰 회사 - 구글 - 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첫 타이틀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Computational Linguist였습니다. 아마 수천 명의 CS 졸업생 중 한 명에 불과했기에, 그 전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초반 스크리닝에 번번이 통과하지 못했죠. 대신 NLP 연구를 했던 2년이 빅테크의 문을 두드릴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 직무가 일본에 있었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살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히라가나도 읽지 못했죠. 다행히 업무에 일본어는 필수가 아니었기에, 일단 기회를 믿어보고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이 선택은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5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족도 생겼고요 (한 명으로 들어가 세 명으로). 일본어도 유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도쿄에서의 5년은 아직도 긴 허니문처럼 느껴지네요.
5년 후, 도쿄의 정말 맛있는 음식들과 훌륭한 삶의 질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유 (제한된 업사이드)로 또다시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더 많은 기회를 찾으려면 일본 사회에 좀 더 깊게 동화되는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한 회사 안에 갇혀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기회가 와서 가족과 함께 옮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지금은 구글 본사 실리콘밸리에 왔습니다. 2025년 지금, NLP와 AI를 하는 엔지니어로 일하기에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소속감”이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을 꾸린 국제 가족에게 소속감은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안타깝지만, 와이프나 저의 고향(홍콩과 한국)도, 지난 집(도쿄)도 최적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을 캘리포니아에서 살아 보니, 아직까지는 지금의 환경이 우리 가족에게 참 알맞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상충(trade-off)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종종 도쿄의 비교적 높은 삶의 질, 편안함, 합리적인 물가, 그리고 기차 중심의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양가 부모님과도 더 멀어졌고, 친구, 일 등 사회적 네트워크도 다시 쌓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한한 업사이드를 만들어 주는 어려운 선택이 결국 장기적으로 우리의 삶을 더 쉽게, 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네요!